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주작?(7분 순삭ver) #효기심2
베트콩이라고 불리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같은 민족끼리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진 세력, 북베트남의 지원과 지령을 받기도 했음), 게다가 시민들과 언론들까지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남베트남에 테러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남베트남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그 꼴을 볼 수 없었다. 과거 한반도가 공산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6ㆍ25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게다가 한 나라가 공산국가가 되면 그 주변에 붙어 있는 나라들까지 도미노처럼 공산주의국가가 될 것이라고 미국은 생각한 것이다. 베트남이 공산국가가 되면 주변국가들도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6ㆍ25 전쟁의 경우 북한의 선빵이 확실했기 때문에 미군과 UN군이 개입할 명분이 충분했었다. 베트남의 경우 남베트남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베트콩은 북베트남의 공식적인 군대가 아니었으며 대부분 남베트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남베트남에 미군을 들여보낼 미국의 명분이 없었다. 국제정치에서 군대를 보내려면 명분이 정말 중요하다.
[희대의 개주작]
1. 개주작 통킹만 사건
2005년 미국의 UN안전보장이사회 관련 옛 문건들이 공개되었다. 1964년 미국의 배들이 먼저 북베트남 배에 대포 한발로 선제공격을 했다. 그리고 북베트남 영해로 진격, 북베트남의 배들이 어뢰를 3발 발사했다(실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설도 있음). 미국은 자신들이 공격당했다며 남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한다.
2. 한국도 참전함
한국, 태국, 호주 등등이 미국의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대만은 13명 보냈다. 일본은 엄청난 금액을 미국에 지원했다. 일본은 1945년 평화헌법을 만들면서 군대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유주의국가가 남베트남에 들어가자마자 당연히 소비에트 연방이 보고 있을리 없었다. 소련과 중국, 북한의 군대도 북베트남으로 지원했다.
3. 설날엔 싸우지 말자
몇 년 안에 북베트남을 박살내고 베트남을 자유주의국가로 만들 수 잇을 거라고 생각했던 미국은 1965년부터 본격적으로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고 1968년까지만 해도 북베트남을 이기고 있었다.
베트남에도 우리나라와 똑같은 음력 1.1 설날이라는 것이 있었다. 2차 대전 때 크리스마스 때 서로 휴전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던 차에 1968년 설날인 1월 30일에는 싸우지 말자고 합의를 하고 남베트남과 미군은 명절을 지내기 위해 휴가를 떠나거나 쉬고 있었다. 이때 이런 합의를 부시하고 수많은 베트콩들이 남베트남을 공격하였고, 구정대공세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4만명이나 죽었다. 그러나 다시 전세는 미군에게 유리해진다. (장비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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