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일어나게된 진짜 이유(10분 순삭ver) #효기심1
1. 베트남 역사 2분컷(기원전 2919 ~ 기원후 1840) 총 4759년 역사
기원전 2919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가 있었다(나라 이름 : 문랑). 그런데 중국의 촉나라한테 박살났고(나라 이름 : 구락), 50년 만에 말아먹었다. 진시황의 진나라에게 먹혔다가 진나라가 망할 것 같자 장수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라 이름을 남월이라고 했다. 이후 944년까지 중국의 지배 속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다가 베트남의 나라 ‘대월’이 만들어지고 968년부터 1802년까지 834년간 왕만 갈아치우면서 나라가 이어졌다. 막판에 세 왕자가 나라를 3개로 나눠먹었는데, 1802년에 응우옌푹아인이 갈라진 대월을 다시 통일시켰다.
이후 1847년 2월에 프랑스가 찾아온다. 우리나라와 프랑스와의 인연을 살펴보면 ‘병인양요’라는 것이 있다.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라고 명령했고, 조선에서만 천주교 신자 8,000명이 죽는 학살이 일어났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죽는 상황이 발생했고, 프랑스가 배 7척 600명을 데리고 쳐들어온 것이다. 국사교과서에는 조선의 군대가 강력한 프랑스를 격파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사실 프랑스는 배 7척에다가 600명만 데리고 온 것이다. 강화도 전체가 프랑스군의 손에 넘어갔었는데, 그런데 프랑스 군대는 조선군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만만하게 보고 술먹고 놀다가 갑자기 기습을 당하고 3명이 죽고 돌아갔다.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19년 전, 똑같은 일이 베트남에서도 일어난다. 1840년 후반 베트남에서도 천주교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았었다. 그 이후 프랑스는 1847년 항구(다낭)에서 베트남 군대 1000명을 사망시키고 시종시켰다. 그 이후 베트남 왕실은 외국인(백인)을 다 잡아 죽이라는 어마무시한 명령을 내렸다.
2. 프랑스는 베트남, 일본은 조선
프랑스는 영국이 청나라로부터 아편전쟁을 이기면서 점점 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들도 대영제국처럼 크고 싶어했다. 베트남은 프랑스에게 먹히게 된다. 그런데 베트남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속국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먹는 꼴을 못봐서 청일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프랑스가 베트남을 먹는 꼴을 못봐서 청불전쟁(1884년)이 일어난다. 결국 청나라는 프랑스에게 개박살이 난다. 이렇게 청나라가 프랑스에게 박살나는 꼴을 보고 쑨원(중화민국 건국의 아버지)이 청나라를 뒤집어 엎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대한민국에 임시정부가 있었듯, 베트남에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려는 독립운동이 슬슬 일어나게 된다.
3. 남한? 북한? 남베트남? 북베트남? (판박이)
2차대전 때 프랑스는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졌었다. 나치 독일에게 완전히 먹혀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베트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의 친구였던 일본이 먹었다. 그런데 원폭 두 대 맞고 일본이 항복을 했다.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항복 직후 모든 식민지를 토해내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한다.
베트남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다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의 식민지였었는데, 샤를 드골의 프랑스가 베트남을 다시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들어오기 전에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1890.5.19~1969.9.2)이 등장한다. 프랑스가 들어오기 전에 독립을 선언한다. 결국 북쪽은 호치민의 북베트남(당시 베트남민주주의공화국), 남쪽은 프랑스가 만든 괴뢰국가 ‘코친차이나공화국’이 들어선다.
베트남 전쟁을 들어보았으면 알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서 싸웠다. 결국 6ㆍ25 전쟁이 끝난 1년 후 1954년 제네바 회담이 열렸다. 제네바 회담은 6ㆍ25 전쟁 이후 남북한 문제 해결하고 동시에 남(프랑스)ㆍ북베트남 문제도 해결하려고 열린 것이었다. 제네바 회담에서 남한과 북한은 각각의 나라로 인정된 게 아니라 하나의 나라로서 휴전이 성립된 것이고, 베트남의 경우는 남쪽과 북쪽이 따로 따로 나라를 만든 것이었다. 물론 프랑스는 철수하고 남베트남은 미국의 바램대로 자유주의 정부를 구성하려고 한 것이다.
4. 빨갱이? (NL 계열)
1955년 호치민은 북베트남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선언을 하였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단이 싫었던 사람들이 통일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테러도 하고 별짓 다했다. 당시 남베트남 정부는 농민들을 위해 ‘토지개혁’을 했었다가 야무지게 말아먹었다. 베트콩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북베트남의 지령과 지원을 받으면서 남베트남국민들과 함께 반정부시위를 하게 된다. 시민들은 오히려 베트콩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틱쾅득(베트남의 승려) : 시위하는 학생들을 죽이고 강가에 버린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소신공양(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에 바침)을 한 승려
결국 시민과 베트콩, 뉴스와 신문들까지 남베트남 정부를 욕하는 지경에 이른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남베트남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 꼴을 미국이 그냥 바라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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