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 - 역사를 바꾼 전쟁사 6] 일본 전국시대 전쟁사 (4) 나가쿠테 전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에스기 겐신의 상경
- 중앙이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평정되고 다케다까지 오다에게 패했을 때 위기의식을 느낀 우에스기 겐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우에스기 겐신은 서쪽의 모리 가문에 연락하고, 동쪽의 호죠 가문과 화의를 한 뒤에 상경을 시도한다.
- 이때 오다 노부나가는 시바타 가쓰이에를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고 부사령관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임명한다. (예전에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킨 후에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는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주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의견 차이로 회군하였고, 시바타는 우에스기 겐신에게 대패한다.
- 우에스기 겐신은 1578년 3월 15일에 원정을 개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3월 9일에 화장실에서 일보다 사망한다.
혼노지의 변(1582년)
- 중원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는 주변의 경쟁자들이 알아서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 재패가 눈앞에 펼쳐졌다.
- 모리 가문을 공갹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구원병을 요청했을 때 선발대로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군사를 주어 보냈고 자신은 뒤따라 가기로 한다.
- 아케치 미쓰히데는 혼노지에 머물던 오다 노부나가를 습격했고, 오다는 싸우다 결국 불질러 자결한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치워버려야 할 적
- 시바타 가쓰이에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케치 미쓰히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는데, 핫토리 한조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핫토리 한조는 핫토리 가문의 당주에게 대대로 전해져오는 이름이었는데, 2대 핫토리 마사나리의 경우는 이에야스의 충신으로 유명하다.
“적은 혼노지에!” - 우리의 적은 내부에 있다!
“여기가 세키가하라다!” - 나의 운명을 결정지을 장소는 여기다!
혼노지의 변 발발 이유에 대한 여러 설
- 원한설
- 야망설
- 15대 쇼군의 사주
- 예수회의 사주
- 히데요시의 사주
이후 히데요시가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서 사태를 수습한다. 히데요시는 모리 가문과 휴전을 맺고 돌아왔다.
키요스 회의
-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은 복수하려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 2남 노부카츠는 약간 덜떨어진 인물이었다.
- 3남 노부타카는 시바타 가쓰이에가 지지하였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장남의 아들을 추대하였다.
1583년 시즈가타테 전투
- 오다 노부타카(오다의 3남)과 시바타 가쓰이에 등 히데요시 행동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반 히데요시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패배하고 자결한다.
코마키ㆍ나가쿠테 전투의 시작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84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2남 노부카츠와 동맹을 체결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결한다.
- 1라운드 : 이에야스 승리 - 모리 나가요시, 고마키 산성 탈환 위해 하구로 진 편성하였으나, 이에야스는 5,000 병사 출진해 급습하여 승리함
- 2라운드 : 심리전, 이에야스 승리 - “히데요시는 야인의 아이로, 말을 끄는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노부나가의 은혜로 출세해 한 사람의 무장이 될 수 있었는데, 노부나가가 죽자마자 그 은혜를 잊고 국가를 빼앗으려 하고 있는 도리에 어긋난 남자이다” - 사키키바라 야스마사
- 3라운드 : 이에야스 승리 - 모리 나가요시, 설욕을 위해서 미카와 공격 계획을 수립했으나 이에야스가 경험이 없는 최후 미군을 공격하고 후미군이 붕괴되어 선두가 고립된 나가요시, 이케다 츠네오키가 사망한다.
- 4라운드 : 이에야스 승리 - 노부오 본거지인 오와리와 이세 분단을 목표로 하여 카니에 성 성주를 포섭하고 군대를 진군시켰으나, 이에야스가 카니에 성을 급습하여 수로 고갈로 항복시킨다.
- 위선이 판치는 곳이 명분이 더 중요해진다!
- 오다의 후계자로서 일본 통일이 더 중요했던 히데요시!
- 나가쿠데 전투의 결말은 히데요시와 노부카츠가 화의를 체결하면서 ‘명분’이 사라진 이에야스가 항복하면서 끝난다. (1584년 11월 강화 성립)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 1587년 모리 가문 정벌(20만 동원)
- 1590년 호죠 가문 정별(21만 동원)
- 1590년 호죠 가문 정벌로 일본 통일을 달성함.
-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쿄로 보내버린다.
이에야스의 전화위복
- 도쿄 이전 후 개발에 몰두하여 최대 다이묘로 거듭나게 된다.
- 임진왜란 당시 참전 거부 명분도 획득함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은 이유
-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조선 정벌 후 영토를 나눠주기 싫었음
- 이에야스 입장에서는 정벌에 참여하기 싫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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