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최진기 - 세계를 바꾼 혁명사 1] 3강. 명예혁명

[최진기 - 세계를 바꾼 혁명사 1] 3. 명예혁명

 

찰스 2(1630~1685, 재위 1660~1685)는 찰스 1세의 아들로 아버지가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후 스코틀랜드에서 즉위하였으나 올리버 크롬웰에게 패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660년에 왕정복고에 따라 귀국하여 이듬해 즉위하였다. 그는 어린시절 독재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으며, 공화정 아래에서 숨죽인 세월을 보냈다.

 

그가 집권하였을 때 민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집권하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짐을 보고 이토록 기뻐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를 그렇게 오래 떠나있었던 것은 짐의 잘못이 분명하군.”

 

초기에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 듯 했다. 브레다 선언(1660)은 찰스 2세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네덜란드 브레다에서 발표한 영국 국민에 대한 약속이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혁명관계자를 사면하였고, 법률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려고 하였다.

 

결국 같은 길! - 철저한 보수반동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찰스 2세는 다시 철저한 보수 반동으로 돌아섰다. 올리버 크롬웰을 부관참시했으며, 돌아온 귀족들과 의회를 장악하였고, 브레다 선언을 철폐하고 혁명파를 단죄하였으며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이 당시에 영국 세인트 폴 화재가 발생하여 민심이 흉흉하였다(1666).

 

결국 같은 길! - 다양한 의약품

 

찰스 2세의 애인은 50명이었고, 서자가 17명이었다고 한다. 그의 주치의 Dr. Condom은 바람둥이 왕을 위해서 양의 내장으로 피임기구를 처음으로 발명하였다.

 

결국 같은 길! - 비선실세

 

찰스 2세의 비선 실세는 바바라 빌리어즈(사치, 돈 쓰기, 도박, 무례, 방자, 국민반감, 미모)와 루이즈 드 케루알(시녀에서 공작부인으로, 정국 주도, 가장 많은 연금, 프랑스를 위해 일함) 등이 있었다.

 



명예혁명의 전개 : 의회의 반격

 

의회는 로마 가톨릭교도들의 공직 진출을 제한하는 법인 심사율’(1673), ‘인신보호법’(1979)을 제정하여 왕의 전제정치에 대항하였다. 이로써 함부로 체포ㆍ투옥하는 것을 금하며, 피구금자는 법정 기간 내 재판 집행, 국왕일지라도 이를 변경시키지 못한다는 기본적 인권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후 의회 내에는 휘그(Whig)당과 토리(Tory)당의 양당정치가 시작되었다. 휘그당은 스코틀랜드의 폭도라고 불렸으며 서부 청교도와 비국교도, 상인 등이 중심이 된 의회파였으며 왕권보다 영국 신교가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리당은 아일랜드의 폭도라고 불렸으며 국교도 중심의 왕당파였으며 왕권을 인정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찰스 2세가 죽고 찰스 2세의 동생인 제임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당시 55세의 제임스 2세가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아들의 계승 반대로 화합을 이뤘다.

 

휘그당은 영국 최초의 근대적 정당으로 자유당의 전신이며, 토리당은 제임스 2세의 즉위를 인정하는 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이후 보수적 풍조로 50년간 정권을 유지하였다(보수당의 전신).

 

명예혁명의 전개

 

의회는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과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윌리엄 3세로 즉위시켰다. 윌리엄 3세는 1689권리장전에 서명하였다.

  • - 국왕은 국가의 기본법을 침해하지 못한다.
  • - 모든 예산은 매년 의회 의결을 거친다
  • - 군대에 대한 봉급, 재판 등은 의회의 의결을 거친다.
  • - 3년에 한번씩 의회가 소집되어야 하며 한 번 소집된 의회는 3년 이상 계속될 수 없다.
  • - “국왕은 군림하나 통치할 수 없다:”
  • - 세계 최초의 근대적 입헌군주국의 탄생

 

하노버 왕조의 시작

 

영국 하노버 왕조를 시작한 조지 1(1660~1727, 재위 1714~1727)는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 중 하나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이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조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외외증손자(딸의 외손자)였다. 1701년 제정된 영국 왕위계승법으로 제임스 1세의 손녀인 어머니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3순귀가 되었다. (영국 왕위계승법은 가톨릭신자의 왕위계승을 원천 금지하고 있어 조지 1세와 그 어머니가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신교도 혈육으로 왕위계승자의 이름에 올렸다) 1714년 어머니가 향년 84세로 사망하자 차기 계승자가 되었고,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54세의 나이에 영국 왕에 올랐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로써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독일과 싸우면서 국민 감정을 고려하여 왕조명을 '윈저'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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