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 - 세계를 바꾼 혁명사 1] 1강. 청교도 혁명(1) - 영국 왕실 가계도
청교도 혁명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가?
1642년부터 1651년까지 벌어졌던, 찰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가 잉글랜드 의회를 중심으로 한 의회파와 3차례에 걸쳐 벌인 내전이다. 공화정이 수립되었을 때 청교도식 법규를 기반으로 하여 통치하였기에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이라고도 불린다. 한때는 청교도 혁명이라고 자주 불렸지만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진지한 고찰에 들어간 20세기 후반부터 콘래드 러설(Conrad Russell) 등 수정주의 성향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성이 부정되고, 일반적으로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이라고 한다.
혁명의 성립조건은 1) 다수의 주체가 있어야 하며, 2) 소수의 대상이 있고(흔히 타도의 대상), 3) 다수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야 하며, 4) 그들을 움직이는 사상이 존재해야 하고, 5) 그것으로 인해 일어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은 1) 다수의 부르주아 계층이, 2) 소수의 절대왕정을 타도하려고 일어났으며, 3) 권력획득이라는 목표가 있었으며, 4) 자유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였고, 5) 결국 반봉건이라는 변화를 일으켜 냈기에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5ㆍ16은 소수가 다수(시민)에게서 권력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할 수 없고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면서 5ㆍ16을 혁명이라고 아직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무식함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반봉건’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왕정을 타파하고, 경제적으로는 지주/소작제를 철폐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봉건제도와 신분제를 철폐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반봉건은 1) 사회적으로는 갑오개혁(1894~1895년)에 신분제가 철폐가 되었으며, 2) 경제적으로는 1948년에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지주 소작제가 폐지되었고, 3) 정치적으로는 1945년 광복으로 왕정이 폐지되면서 성취되었다(일제강점기도 왕정으로 보아야 한다).
영국 왕실 가계도(튜터왕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헨리 8세 이후의 왕실 가계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왕조사를 이해하는 기본은 왕조의 계보를 알아야 한다.
헨리 8세는 영국국교회를 만든 인물로 형이 죽고 형수와 결혼한 인물이다. (형사취수의 제도는 흔히 정복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결혼제도인데, 만약 정복하러 나갔다가 죽으면 가족을 챙기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과 스페인의 관계를 위해서 헨리 8세는 형(아서 튜터)와 결혼했지만 형이 일찍 죽으면서 미망인이 된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막내딸인 캐서린과 결혼을 하게 된다.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했다. 당시 캐서린의 어머니인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 왕국을 통일시키고, 레콩키스타로 이슬람세력을 몰아내었으며, 스페인을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 절대군주제를 확립한 여왕으로 콜럼버스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이런 스페인의 후원을 받고 있던 교황은 헨리 8세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면서 ‘영국성공회’를 출발시켰고 이후 이혼을 밥먹듯 하면서 총 여섯 명의 아내를 맞이한다.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메리 1세(1516~1558, 재위 1553~1558)가 태어났고, 앤 볼린과의 사이에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재위 1558~1603가 태어났으며, 제인 시무어와의 사이에서 에드워드 6(1537~1553, 재위 1547~1553)세가 태어났다. (에드워드 6세는 『왕자와 거지』의 모델이라고 한다) 영국 튜터 왕조의 전성기는 헨리 7세가 만들고, 헨리 8세가 다졌으며, 엘리자베스 1세가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메리 1세는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룬 펠리페 2세와 결혼하였는데,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여왕 마리아 마누엘라, 영국 여왕 메리 1세,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딸 이사벨 데 발로이스,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2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아나와 결혼하였다. 펠리페 2세의 아버지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였다. 메리 1세는 1556년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에 참전을 결정하였고, 영국이 패전하면서 프랑스에 마지막 대륙 거점인 카레(칼레)를 잃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죽으면서 튜터 왕조는 끝이나고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었다. 제임스 1세(1566~1625, 재위 1603~1625)는 당시 스코틀랜드 국왕(제임스 6세, 1567~1625)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여 스튜어트 왕조를 열었다. (제임스 1세의 증조모이자 외증조모 마거릿이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의 딸이며 엘리자베스는 헨리 7세의 손자이기에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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