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12] 인간 군상들(숙주나물과 칠삭둥이 압구정)
12ㆍ12의 주역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12ㆍ12 사태를 막으려고 했던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특전대사령관), 광주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한 정웅(31사단 사단장), 안병하(전남경찰청장)... 이분들은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은 자신의 측근들을 엄청 챙겼다.
측근들을 엄청 챙긴 세조
계유정난 공신들(정인지, 정창손, 최항, 권람, 홍윤성, 양정, 신숙주, 한명회) 역시 세조가 엄청 챙겼다고 한다(양정 한 명만 훗날 죽여버림).
권람이 세조에게 한고조 유방과 같다고 말했을 때 세조는 화를 냈다. 한고조 유방은 자신을 도왔던 공신들을 죽였는데 자기는 자기를 도운 공신들과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공신들 중에 가장 개차반인 사람이 홍윤성이다. 길거리에서 노파를 두들겨 패서 죽였어도 넘어가줬다. 세조는 반역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최대한 공신들을 관대하게 대했다고 한다. 김종서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인 양정이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라는 말을 했을 때 양정은 죽인다.
세조의 측근들 중에 가장 권력을 누리고 훗날 욕을 쳐먹는 인물이 신숙주와 한명회다.
변절의 대명사 신숙주
신숙주는 오늘날 변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녹두나물’이 잘 변한다고 ‘숙주나물’로 부르기도 한다. 신숙주는 세종 시절 집현전에서 밤늦게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세종이 친히 곤룡포를 덮어줬다는 일화도 있다. 세종이 어린 단종을 집현전 학사들에게 돌봐달라고 이야기했을 때 신숙주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신숙주 한 명만 변절한 것이 아니다. 신숙주는 성삼문 등과 친했고, 또 한편으로는 수양대군과도 친했다. 신숙주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명의 왕을 모시면서 주요 관직을 다 섭렵했고 59세로 장수(당시로서는 장수)하였다.
뛰어난 학자였던 신숙주는 세종 때 일본에 갔다가 성종 때 『해동제국기』라는 책을 써냈다. 그리고 『국조오례의』, 『동국정운』(한글 음운서) 등도 썼다. 세조가 권력을 잡았을 때 나라의 외교문서는 모조리 신숙주를 거쳤으며, 과거시험의 출제와 채점도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병법에도 조예가 있었는지 세조의 명을 받고 여진족도 정벌하였다.
칠삭둥이 한명회
칠삭둥이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세조가 훗날 “한명회는 나의 장량, 신숙주는 나의 위징”이라고 할 정도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날 신숙주, 세조가 한명회와 술을 마실 때 세조가 술에 취해서 신숙주를 꼬집었고 그것에 항의하는 신숙주에게 ‘너도 나를 꼬집어라’ 말했다. 그 말을 믿고 신숙주가 꼬집었는데 조금 강하게 꼬집은 듯 하다. 그날 밤 세조가 자면서 신숙주의 행동이 조금 괴씸하다고 생각했고, 이걸 미리 간파한 한명회가 새벽마다 책을 읽던 신숙주의 집에 사람을 보내서 오늘은 책을 읽지 말라고 했고 불을 켜지 말라고 했다. 한편 세조 역시 신숙주의 집에 사람을 보냈는데 신숙주가 책을 읽지 않고 있다고 보고 받고 신숙주가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신숙주와 한명회는 서로 절친이고 서로 사이좋게 권력을 누린다. 이들은 세조에게 ‘아니되옵니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이시애의 난(1467년)이 일어났을 때 이시애가 ‘신숙주와 한명회도 나의 편’이라고 하자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한명회의 큰 딸은 예종의 아내가 되었고, 한명회의 둘째 딸은 성종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강남의 압구정동의 땅이 한명회의 땅이 되었고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단종을 죽인 벌을 받은 것인지, 한명회의 두 딸과 세조의 아들들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에 가보면, 결국에는 차디찬 땅에 묻히게 되는 데 살아있을 때 조금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고 아등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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