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의 역사로 보는 정당정치 - 2강] 영국의 정당정치 : 정당정치의 시작
영국 정당정치사의 주요 주제
- 영국 자유당은 왜 소멸되었는가?
- 영국 보수당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 영국 노동당은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보수당의 원조가 토리(Tory) - 아일랜드어로 “불량”, “도적”
자유당의 원조가 휘그(whig) - 스코틀랜드어 ‘whiggamor’(모반자, 말도둑)에서 유래
[제임스 2세와 명예혁명]
제임스 2세(1633~1701)는 찰스 1세의 아들이자 찰스 2세의 동생이다. 청교도 혁명 중에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660년에 왕정이 복고되자 영국으로 돌아왔다. 형인 찰스 2세가 죽자 제임스 2세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였으나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자였다.
제임스 2세는 원래 요크공이었는데, 미국의 뉴암스테르담을 뉴욕으로 바꾼 사람이다.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세우자는 토리당과 반대하는 휘그당이 대립하게 된다. (영국에서 왕권의 안정을 추구하였던 토리당과 왕권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던 휘그당)
이후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는데, 제임스 2세의 후계 탄생으로 인해 토리당과 휘그당이 연합하여 오렌지공 윌리엄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후에 루이 14세의 원조로 아일랜드에 상륙했다가 패하고 프랑스에서 죽게 된다)
[토리당과 휘그당의 연합의 비밀]
역사속에서 서로의 이익에 충돌하여 싸울 수밖에 없는 지주와 자본가의 관계가 영국에서 일시에 손을 잡는 상황이 발생된다.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 이후에 관세를 피해 영국으로 넘어간 플랑드르의 양복공들로 인해서 영국에서는 모직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감자가 들어오게 되고 농작물 가격이 떨어졌다. 이때 농사가 힘들어져 양을 키우는 지주들이 많이 생겼다(엔클로저운동). 시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에서는 공장을 세워 기계를 돌리면서 모직공업이 발달하였다.
엔클로저 운동을 벌이는 지주를 ‘젠트리’라고 하고 도시에서 공장을 돌리는 자본가를 ‘부르주아’라고 한다. 이 둘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면서 손을 잡게 되었다. 지주 계층을 대변하는 토리당과 자본가 계층을 대변하는 휘그당의 연합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량의 양모가 필요했던 자본가(브루주아)와 양모를 팔아 부를 축적하고자 했던 지주(젠트리)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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